어느 고졸 개발자의 10년의 회고록

Gemini Kim
12 min readOct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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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일한 지 10년이 지났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여러 감정들이 있었는데 시간도 많이 지났고 슬슬 몇몇 일들은 잘 기억나지 않아서, 언젠가 미래에 다시 한번 더 되돌아 보기 위해 회고록을 작성한다.

어느 고졸 개발자

어린 시절의 가난했고 어두운 얘기를 하면 끝도 없으니 간단히 적어보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공부는 안 하고 맨날 게임만 하다가 장래희망게임 개발자가 되었고 계~속 게임만 하다가 중학교 때 VB로 개발해보고 (게임 매크로), 게임 서버 운영도 해보고 (메이플, 바람 등등..), 공고 가서 학교 대표로 뽑혀서 정규 수업 거의 안 듣고 중간/기말 합쳐서 5번만 보고, 3년 내내 기능경기대회 나가서 상 1번 타고, 중소기업청에서 표창장 받았더니 졸업 직전이었다.

어떤 선생님은 ‘가뜩이나 3D 직업인데 고졸로 취업하면 개무시 당하고 도 못 버니 대학교 가’라고 했지만, 집은 여전히 계속 가난했고, 그 무엇보다 코딩이 마냥 좋아서 19살 10.10.25에 취업했다.

나는 수능 자체를 본 적이 없는(나는 이걸 순혈-고졸이라 부른다), 수능날에도 버그 잡느라 바빴던, 첫 출근 날 화장실 가도 되냐고 물어봤던, 꼬맹이였다.

그리고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10년간 9개의 회사에 속해있던 기록을 남긴다. 사실 정말로 하고 싶은 말들이 더 있으나 회사를 겨냥하는 게 조금 불편해서 순한 맛으로 작성.

T사

애증의 첫 회사 지나고 보니 배운 것도 많았던 곳이다.
컴퓨팅에 대해 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던 곳이다.
유일하게 천재 취급받았었고 잠시나마 ‘내가 진짜 천재인가?’ 했던 회사.

대학을 안 갔으니 C/S 이론을 별도로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당시 내가 가진 능력은 말 그대로 코더로서 VB, C, C++(MFC) 정도였고, TCP/UDP 기반의 Middleware-Server 정도는 만들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이론 보다 실행에 더더더 최적화되어있었다.

아무튼, 이론은 조금 부족했지만 ‘OS 위에서’는 필요한 S/W를 만들 수 있었다,
설마 입사해서 ‘OS 없이’ F/W를 개발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C/S 지식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펌웨어 개발은 처음에 너무 어려웠었다, H/W 도 Revision 이 있으니, H/W 레벨의 이슈일 수도 있고, 원하는 동작이 안 되는 것이 단순히 내 코드만 체크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CPU에 코딩하는 것을 넘어서, CPU 동작의 이해, H/W 레벨에서 통신 간의 발생할 수 있는 이슈들, CPU-Clock 맞추기 위해 땜질로 크리스탈도 바꿔보고 저항도 바꿔보고, 등등 수많은 이슈인두와 오실로스코프를 이용해서 디버깅했어야 했기 때문에 몸으로 배울 수밖에 없었다.

H/W 설계가 달라지거나 리뉴얼 되면 ‘sleep(1000)’ 이 함수가 정확히 1초 쉬는 동작을 하도록 열나게 디버깅해야 했었다. 이것 또한 코드로만 해결이 되는 게 아니라 인두와 스코프로 함께 일궈내야 했다.

리소스 자체가 매우 적은 환경이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극도의 최적화를 해야 했고, EEPROM과 RAM을 적절히 사용해야 했다. TCP 모듈 같은 경우도 H/W, F/W 스펙에 맞춰서 처리해 줘야 제대로 동작하기 때문에 꽤나 낑낑댔다.

아무튼 그런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컴퓨팅에 대한 이해도를 올릴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C/S를 따로 공부하지 않았다, 다만 이때 체득한 것을 기반으로 많은 것들을 자연스레 이해하고 유기적인 생각이 가능해진 것 같다.

이때 몸으로 얻어낸 것들은 아직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F/W는 여전히 매력적인 분야다, 비교적 적은 코드가치 있는 것을 생산해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F/W, Middleware-Server를 주로 개발하였고, 몇몇 솔루션을 개발했다.

대부분 AVR 이였던거 같은데, 특정 분야에는 ARM 을 썼고, 커널이 올라간 보드도 있었다, 어쨌든 OS가 올라가있으면 활용하기가 정말 편했다.

그때 ASM으로 개발하고, 커널단에 SD-CARD, TCP 드라이버를 직접 포팅 하시던 수석님이 계셨다,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이때 개발한 F/W 중에는 한전에 납품 된 제품도 있었다, 길가에 가다 보면 한전 PAD S/W이라고 적힌 철로 된 네모난 같은 게 있는데 거기 안에 들어가는 장비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전국에 내 손을 탄 S/W가 깔려있다, (지금은 업체가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한전에 납품하기 위해서는 BMT를 거쳤어야 했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전국의 모든 한전 지사를 돌았었다.

또,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는 회사에 방위산업 부문이 있어서 위성에 들어가는 F/W에 개발 참여도 할 수 있었다. 어떤 위성인지 정확히 몰랐으나 육군 사람들이 회사에 왔다 갔다 했었다. (상세히 적고 싶은데 잡혀갈까 봐 줄인다.)

C사

첫 회사에서 정부과제 중 만난 협력업체였다, 병특TO를 들고 전직했다.
스카우트 정도는 아니고 꼬드김 정도라고 볼 수 있겠다.

여기에서는 주로 Embedded S/W 와 Server-Side 개발을 둘 다 진행했다, 장비 대부분이 Window여서. NET 기반으로 개발할 수 있었다, 서버는 ASP.NET 과 신규로 개발한 프로젝트는 Spring 을 썼었다.

다만 이곳도 솔루션/제품을 납품하는 업체였기 때문에 출장도 많이 가고, 때로는 장비 설치 지원을 위해 현장도 나가고, 특이한 경험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큰 회사들이다 보니 보안이 빡셌다, 전자기기에 모두 스티커를 붙여야 하고 PC는 Network를 접속하게 되면 나갈 때 포맷하고 나가야 했다.

그 와중에도 기억나는 것은 잠수함 제작하는 장소가 있었는데, 그곳은 특수 건물 밑에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잠수함 전체를 천막으로 가려놓고, 작업하는 부위만 살짝 열어서 작업을 하고 있더라.

이곳에도 장비를 설치해야 해서 출입하려는데, 기존 보안 + 민증을 맡기고 들어갈 수 있었다. (한국인만 들어갈 수 있다고 들었던 것 같다)

여러 군데 투입되어 솔루션을 만들고 유지 보수하면서 느낀 것은 병특이 끝나면 꼭 남의 회사 일이 아닌 자체 서비스(B2C 건, B2B 건)를 만드는 회사, 또는 내 서비스를 만드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I사 & T사

병특 끝난 후 2개의 회사를 매우 빠르게 거쳐갔다.
도합 1년소비했다. 하고 싶은걸 못했으니 낭비가 맞을 수도 있다.

I사는 채용 시 B2C 서비스 팀을 만들겠다는 얘기를 계속했고 인내하면서 내 회사라는 생각에 각종 현장에 나가서 설치도 도와주고, 틈틈이 프로젝트 진행했으나, 계속되는 기다려 달라는 말에 버티다 버티다 결국 참지 못하고 퇴사했다.

T사는 서비스 자체가 하나 존재하긴 했었다, 이걸 더 키워보고 싶었고 드디어 서비스다운 서비스를 제대로 해보나 싶었다, 팀원이 전체 3명뿐이었지만 기대가 컸었다, 그런데 자꾸 서비스와 전혀 상관없는 일들이 들어왔다, 남의 일을 해주는 기분이었다. 결국 내가 해보고 싶었던 방향의 일은 해보지 못하고 퇴사했다.

두 회사 모두 내 환경, 집안 상황을 많이 이해해 주고 배려해 준 부분은 고맙게 느꼈으나, 퇴사에 대한 후회를 하지는 않는다. 천 번의 기회를 줘도 똑같이 했을거다.
아니, 가능한 더 빨리 퇴사했을 거다.

레저큐

병특 끝난 후 혼돈의 시기를 지나 만나게 된 레저큐다.
고생도 고생이었지만, 일의 즐거움과 서비스를 키워나가는 재미를 느꼈던 곳,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고마운 사람을 만난 곳이다.

가자고라는 서비스의 런칭 부터 회사의 엑싯 직전까지 함께 했었다.
서비스가 종료될 때의 여러 가지 복잡 미묘한 감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기준 크리스마스에 트래픽과 결제량 폭발한 그 기억을 잊을 수없다, 물론 정점을 찍고 있었는데, KT-Cloud 장애 나서 화났던 것도.

두 번 다시는 이렇게 서비스에 애착을 가질 순 없을 것 같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전날 거래액 체크하고, 개인 시간 모두를 투자했었다.

나의 역량은 이때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 같다, 당시 CTO에게 정말로 많이 배웠다, 원래도 좋아하던 코딩을 징하게 했다. 마냥 재밌었다, 일이 단순히 회사 일이 아니라 내 일이었다.

직접 런칭한 나의 첫 서비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여담으로 이 때 같이 일한 사람들 중 CTO 포함 4명이 지금 토스페이먼츠에 함께 있다 :D
(토스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한번 더 같이 하시지 않겠습니까!?)

레진엔터테인먼트

개발 외에 유일한 취미가 영화, 웹툰인 나에게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었던 회사.
능력 있는 동료들이 많았던 회사, 그러나 당시 상황이 너무너무 아쉬웠던 회사다.

좋은 동료분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일 자체도 흥미로운 부분이 꽤 있었다. 웹툰 산업 자체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관련 토이 프로젝트도 해봤다.

어쨌든 글로벌 서비스를 하는 회사이기에 그와 관련해 고려해야 하는 것들, 애증의 GCP와 함께 서비스를 유지하고 확장 시키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몇가지 외부 이슈가 터지게 되었고, 여러 가지 상황이 많이 악화되었다, 결국 좋은 개발자들이 조금씩 퇴사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이 속에서 내가 일하고 있는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으나, 결과적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카카오메이커스

아쉬운 점이 굉장히 많은 곳이다, 당시 함께 있던 개발자분들이 소수였지만 모두 좋은 분들이었고 회사와 서비스에 애착도 많으신 분들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이 복잡했다, 상세히 적을 순 없지만, 개발자가 부족한데도 개발자가 중요치 않게 느껴지는 구조였다.
입사하니 면접관이셨던 분도 퇴사해있고, 뭐… 그랬다.

기억나는 작업으론 카톡 3탭(#탭)의 쇼핑 탭에 메이커스 상품을 노출시키는 작업을 했었다.
그 외에도 주로 동료들에게 테스트 코드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기존 코드를 개선하고 같이 정리하는 작업들을 진행했다.

어쨌건 카카오 인프라 기반에서 서비스가 되고 있어서 운영 자체는 정말 편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극명한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나 같은 성향에게는 단점이 매우 크게 와닿았다.

이곳 퇴사를 하면서 확실하게 결심했던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정보로만 회사를 판단하고 이직하지 않기로 했다.

우아한형제들

개인 철칙에 ‘퇴사한 회사는 절대 다시 안 돌아간다’가 있는데, 유일하게 돌아갈 의향이 있는 회사, 그만큼 즐거웠던 회사.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그냥 많은 부분이 좋았고 추억이 넘치는 곳.

가끔 이 회사가 안 바쁘다고 널널한 회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팀바팀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팀은 바쁜 팀이었지만, 우형 내부에서도 훌륭한 팀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업무가 루즈한 것보다는 명확한 목표를 달고 빡세게 달리는 걸 좋아하다 보니 꽤나 잘 맞는 팀에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개발 외적인 부분에 여러번 빡치긴 했음..)

해낸 일, 프로젝트, 모두 재미있었고, 긴급 이슈 대응한 걸로 발표까지 해보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회사다.

무엇보다 당시 CTO님이 채용을 정말 잘 한 것인지, 팀장님이 훌륭한 것인지몰라도 팀 동료들 조합이 특히 좋았다, 배울 점이 많고, 책임감 있고, 항상 노력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훌륭한 실장님도 계셨는데 중간에 잠시 사라지셨다가 내가 퇴사하는 시기에 나타나셨다.

나랑 성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데 킹뽀대님 같은 분도 만나고 정말 좋았다.

아쉬운 점으로는 각 팀/파트 별로 교류가 없고, 불가능한 구조인 게 조금 아쉬웠다.
실제로 퇴사할 때 그간 대화를 못 해본 동료들과 얘기했을 때 다들 ‘같은 회사에는 있지만, 같이 일을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고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며칠 전 같은 파트였던 프런트서버파트 개발자들과 저녁을 먹었다, 멤버중엔 신사업으로 가거나 나처럼 이직한 분도 있었다. 같이 힘들었던 시기를 추억할 수 있어서 좋았다.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만나기를.

아무튼.. 우형은 지금도 잘 되고 있지만, 계속 쭉 잘 됐으면 좋겠다 :D

우형 퇴사 회고를 써놨는데 정치 이슈와 시기가 겹쳐서 비공개로 돌려놨다, 퇴사 1주년에 공개해야지.

토스 & 토스페이먼츠

현재 새로운 도전을 하기위해 온 회사. 토스에서의 도전에 이어 더 크고 명확한 목표를 가진 토스페이먼츠와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 얼마나 다닐까?

나에게 성장 방향을 제시해 주고 나의 성장 곡선의 정점을 찍어준, 개발자로서 영향을 가장 많이 줬던 CTO와 다시 함께 일하고 싶어서 이직을 결정한 회사다.

매니징 존재하지 않는 회사,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 가치 있는 일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들, 하나의 목표를 보고 함께 가는 사람들이 있다.

넷플릭스 문화니 뭐니 그런 좀 있어 보이려 하는 말들은 관심 없어서 잘 모르겠고 여러 가지로 말도 많은 곳으로 알고 있다.

다녀보니 그런 건 잘 모르겠고, 명확한 목표를 갖고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다, 일로만 생각했을 때 국내에 이보다 일하기 더 좋은 회사가 있을까?

일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바쁘다 매우 바쁘다, 근데 내가 다녀본 회사 중에 제일 바빴냐 묻는다면? 글쎄, 여기 와서 아직 날 샌 적은 없는데..?

덩치가 있는 회사도 One-Team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곳.

솔직히 얼마나 다닐지 모르겠으나, 확실히 명확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마치며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모든 회사, 동료, 형, 동생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스스로 많이 성장했다 느끼지만, 지금의 저의 모습은 혼자서는 절대 이룰 수 없었을 겁니다.
(물론 제가 노력한것도 있지만요ㅎㅎ)

이제 10년입니다. 100살에 죽는 다치면 앞으로 71년 더 해먹을 수 있습니다.
39살까지 안 죽는다면 11–20년 사이의 기록을 한 번 더 들고 오겠습니다.

끝으로, 올해로 함께한 지 9년이 된 아내에게 전합니다.
일 중독자 남편을 사랑해 주고 이해해 줘서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감사하고, 많이 사랑합니다.

아직도 너무 재밌다,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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