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서비스의 죽음 — 가자고

Gemini Kim
8 min readJul 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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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서비스를 자식만치 애정하고 아끼는 경험을 하기 마련입니다.
저의 경우는 레저큐(현 야놀자)라는 회사에서 운영했던 가자고라는 서비스가 그런데요.

직접 서비스 런칭 부터 운영했던 것과 제대로 된 제 첫 B2C 서비스였던 것, 매일매일 성장하는 모습을 본 것 들이 큰 컸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애정하고 서비스에 과몰입하다 보니 매일 매출도 체크하고 개인 시간도 모두 투자하고 지나고 보니 애정을 넘어 집착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퇴사할 시기 즈음에 어쩌다 읽었던 이 글에서 아래 문구를 보고 깊이 공감했었습니다.

자식 같은 서비스였지,
내 자식은 아니었구나.

다시는 어디에서건 어떤 서비스 건 그때만큼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는 시간 없는 개인 시간까지 모아 모아서 서비스에 쏟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퇴사하였지만 계속 관심 가지고 응원하고 있었던 ‘가자고’ 가 오늘 공식적으로 서비스 종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자고 서비스 종료 공지

그 어떤 서비스 보다 아꼈었던 ‘가자고’가 종료를 하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과거의 일들이 아련하게 스쳐가며 복잡 미묘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를 추억하고자 글을 남깁니다.
(기억에 의존하여 작성하는 글이라 관련되어 틀린 내용이 있어도 이해 부탁드립니다)

기억 나는 일들

# 오픈 날

오픈을 위해 열심히 달렸고 대망의 오픈 예정일 늦은 밤에 성공적으로 오픈하고 최종 기능 테스트와 결제 테스트 후 모두 초췌한 상황에서 ‘일단 집에 가자’ 했던 게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물론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이슈 대응으로 출근도 못하고 정신없이 집에서 대응했던 것도 더 또렷하게 기억나고요 ᄒᄒ

# 대규모 마이그레이션

서비스가 계속 성장하고 기능이 확장되면서 대규모 마이그레이션이 필요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모두 저녁부터 모여서 새벽에 서비스를 내리고 마이그레이션을 진행했습니다.

이때 몇 번 실해해서 롤백하고 다시 준비하고 실패하고 며칠을 이렇게 새벽 작업을 했었습니다.

저는 약간의 뻥을 보태서 여태 여러 가지 종류의 마이그레이션만 몇백 번은 한 것 같은데요, 제가 마이그레이션 담당이었다면 아마 한방에 끝냈을 겁니다(이제는 말할 수 있다!! ㅋㅋㅋ)

그래도 반복되는 새벽 작업 속에서도 다 같이 모여서 으쌰 으쌰하고 야식도 먹고 아침에 남들 출근할 때 퇴근하고 그랬었죠, 역시나 재미있었어요.

# 해커톤

당시 가자고 팀에 개발자가 매우 적었으나 그래도 해커톤 행사를 했습니다 기획자분들과 디자이너 분들도 함께 했었죠.

저는 구글에드센스 같은 ‘가자고 상품 광고 플랫폼’을 만들었었습니다.
(제가 꼴등했던 거 같습니다ㅋㅋㅋ..)

ES+Kibana 관련된 걸 했던 동호형이 1등하고 상품으로 유학 갈 때 쓸 캐리어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커톤에서 나왔던 기능 중 ‘상품 상세’에서 ‘몇 명이 이 상품을 보고 있어요' 기능을 현준님이 만들었던 것 같은데요.

이 기능은 해커톤에 그치지 않고 실제 서비스에도 적용했었던 거로 기억합니다.
작은 행사였지만 여러 가지로 인상 깊었고 재밌었어요.

기억 나는 작업

# 결제 프로세스 개선

오픈 직후 결제 프로세스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게 파악되었습니다. 이때에는 브랜트 형의 주도로 결제 프로세스를 다시 뜯어고치는 작업을 했었습니다.

작업은 한 일주일 했었나요, 결과적으로 당시 상황에서 필요한 스펙을 만족시키는 수준으로 개발을 끝냈고 성공적으로 운영에도 적용했습니다.

제 기억엔 그 후 결제 프로세스를 다시 만들 정도에 이슈는 없었습니다 (아마 지금까지도 같은 프로세스를 쓰지 않을까 싶네요)

# 멀티 숙박 검색 기능

제가 대략 연동항 숙박 연동사만 약 15업체 이상 정도였던 거로 기억합니다.
그중에 익스피디아도 있었고요 (여기 관련돼서 할 말이 많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서 언젠가…!)

어쨌든 이렇게 숙박 연동사가 많아지니 같은 ‘동일한 숙박업소 명’이 많아지고 사용자가 상품 검색에 불편하고 효율적인 가격 비교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멀티 숙박 검색 엔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당시 CTO셨던 병훈 님이 진두지휘하고 당시 상황에 딱 적절한 엔지니어링으로 빠르게 개발을 끝냈습니다.

결과적으로 고객은 ‘중복명 없는 숙박상품’을 검색하고 상품 상세에서는 동일한 가자고의 템플릿으로 모든 연동사의 객실을 비교하고 즉시 예약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고객은 지금 산 숙박이 어디 연동사 인지 아예 몰라도 됐었죠)

이 기능 만들 때 오버 엔지니어링이 얼마나 아둔한 짓인지 많이 느꼈습니다.

물론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서비스라면 조금 다른 얘기겠지만, 어느 정도 확장이 가능한 구조 안에서 최적의 엔지니어링을 해야 한다는 걸 몸으로 느꼈습니다.

# Open-API

가자고는 제가 퇴사할 때 기준 약 20개의 이상의 외부 API 연동사를 보유하고있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Open-API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대부분 여행/레저/숙박 연동사는 영업력이 뛰어나서 상품을 많이 가지고 있으나 API 품질이나 성능면에서 이슈가 있는 곳들이 많았습니다.

이를 한 번 더 감싸서 외부에 API를 제공해주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시스템의 장점으로는 약 20개가 넘는 연동사를 한 가지 스펙으로 연동할 수 있다는 거였던 것같습니다.

(제가 퇴사 전에 마지막으로 개발했던 작업인데 당시 정확히는 Open-API 가 아니었습니다, 오프라인 통해 계약관계가 맺어진 곳에 제공했으니 그냥 Close-API였고 설계 부분만 Open-API가 가능하도록 작업했던 것 같네요)

많은 연동사를 내부적으로 추상화 시키고 성능이 좋지 않은 API를 한 번 더 최적화 시키는 작업은 재밌었고 국내 여행/레저의 많은 상품들을 한 번에 모아서 품질 좋은 API로 제공할 수 있게 되어서 의미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커머스 시스템 전반에 대한 경험

사실 서비스 런칭 전후부터 소수 인원으로 개발하다 보니 손을 안 댄 곳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좀 더 안정되고 나서야 어느 정도 역할을 나눠서 진행이 됐지만 네 거내 거 그런 거 없었던 거 같습니다.

회원, 상품, 결제, 주문, 정산, 리뷰, 푸시, 검색, 외부 연동사 상품 연동, 어드민 등등 그냥 닥치는 대로 다 했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규모가 있는 커머스 서비스들은 각각 도메인별로 팀이 찢어져있거나 하는데 운영이 되고 있고 계속 성장하는 상황 속에서 모든 도메인을 경험해본 것은 정말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힘들긴 했…)

결국 지나고 보니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다시 창업을 도전하지 않는 이상 그때처럼은 못할 것 같네요.

잘못했던 일들

# 팀 리딩

개발자가 늘어남에 따라서 프론트팀, 백엔드팀으로 분리되었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백엔드 팀을 리딩 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팀원 분이 개발한 피처를 내보낼 때마다 장애를 내던 상황이 발생했고 그분에게 화를 많이 내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인신공격을 한 것은 아니지만 개발자로서 부족한 부분에 대해 너무 과하게 지적하고 뭐라고 했었습니다.. (당시 동료에게 물어보니 그분이 잘못한 부분이 있었지만 꽤 심하긴 했다고..)

코드 리뷰 강화라던가 다양한 방법으로 그런 문제를 줄여갔어야 했는데
직접 일을 다 해버리거나, 쉬운 일만 주는 등 챙길 시간도 없고, 일도 많다는 핑계들과 상황으로 제대로 리딩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팀원은 결국 프론트팀으로 옮겨갔습니다.

툭하면 ‘저 사람 잘라도 나 혼자 다할 수 있다’, ‘못하면 버리고 가는 게 맞다’, ‘회사의 1목적은 최소 투자로 최대의 이윤을 남기는 거다’ 등등 최악 꼰대 멘트들도 많이 했었던 거 같습니다. (25세부터 꼰대 유망주)

생각도 나이도 어렸고, 서비스에 애착이 너무 커서 그렇게 자기 일처럼 화내고 그랬는데 정말 후회하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경험을 계속 복기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었고, 되어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만약에 다시 리딩을 하게 되더라도 절대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일단은 회사에서 리더 역할을 해야 한다면 그곳에서는 생각보다 더 빠르게 퇴사하게 될 것 같네요. :D

마무리

고결한 생명도 계속 태어나고 죽어가는데, 서비스도 마찬가지겠죠.

세상에 선보이고 최선을 다해 키워나갔는데, 마지막까지 곁에서 지켜주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덕분에 정말 많이 배웠고 즐거웠고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잘 돼서 사라지니 다행이다 고맙다 가자고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래 글을 제가 레저큐 퇴사 후 작성했던 글입니다
혹시 이 글이 재미있으셨다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D
https://medium.com/@geminikim/레저큐-퇴사-회고-d-5aa67ad0de6

서비스 로고 티 입고 해외 여행 (의미 불명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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