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형제들을 떠나며

Gemini Kim
12 min readFeb 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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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초안은 2019.10월 쯤 작성되었고, 2020.02월 쯤 완성되었으나,
공개하려 할 때 여러 사회 분위기가 영 아니어서 공개하지 않았고, 2021. 02월에 공개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니 벌써 퇴사한지 1년이 지났고, 토스에 온 지 1년이 됐네요.)

과거의 생각을 수정하고 싶지 않아서 약 1년전 작성한 버전 그대로 공개합니다, 이 점을 참고하여 읽어주세요 :D

읽어주셔서 미리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써놓지 어언 네 달이 되어간다, 퇴사 결정을 하고부터 작성했는데, 퇴사한지 어느덧 1달이 흘렀다, 아직 마음 정리를 다 못한 것인지 아쉬움이 있는지 쉽게 공개를 하지 못하고 계속 끄적인다.

아마 이 글을 공개했다면 떠난 마음 정리가 끝난 거겠지.. (혹은 글 마무리가 영.. 안되거나)

우형에 오기까지..

우아한형제들에 입사하게 된 스토리가 조금 특이하다, 꽤나 돌아서 왔다.
16년도 당시 이직을 원했고 레진, 우형이 동시에 합격한 상황이였는데

두 회사 모두 너무 매력적였고, 여러가지 고민 끝에 더 궁금하고 글로벌 서비스를 하고 있던 레진에 입사하였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다시 이직을 고민할 때 가보고 싶었던 우형에 입사하게 되었다.

면접보고 2년뒤에 입사하는 기이한 경험이였다.

빙빙 돌아서까지 우형으로 오게 된 이유는 짧지만 즐거웠던 성철 이사님, 영한님과의 면접 기억이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 이유로는 2년이 지나서 영한님을 만나 석촌호수를 걸었는데, 아직도 신나게 재밌게 일하고계신 모습을 보면서 ‘아니 대체얼마나 재밌길래??’ + ‘이런 분하고 일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지나고 보니 정말 감사한 인연이었고, 조금 짧았지만 정말 많이 배우고, 여러 가지를 느끼고 스스로도 많은 고민해보는 값진 경험이었다.

레거시 청산

입사 후 가장 처음 하게 된 프로젝트는 레거시 청산이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 파트에는 PHP 코드가 꽤나 있었기에, 이 부분을 JAVA로 포팅을 진행하였다.

퇴사하는 현시점 기준으로 우리 팀에서 직접적으로 제공하는 기능에는 더 이상 PHP 가 없다.

마냥.. 재밌진 않았지만 목표가 뚜렷했고, PHP 하나씩 뽀개나가면서 희열도 느껴지고, 쳐내가는 재미가 있어서 성취와 만족도는 있었다.
(PHP git-repository 를 제거할 때의 짜릿함은 잊혀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운영 중인 서비스에서는 수많은 예외 케이스와 하위 버전 지옥 때문에 레거시를 청산하는 게 정말 어려운 것 같다, 몇 가지 전략을 두고 짧고 빠르게 쳐내가면서 정면돌파하는 게 승리 포인트였던 것 같다.

기존 시스템을 잘 알고 있던 제현님이 정리를 정말 잘해주셨고, PHP 폭파 전문가 규진 님이 있었기에 생고생을 했지만 무탈히 성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PHP 폭파의 중요성을 알고 계셨던 팀장님의 카리스마 덕)

먼데이 프로젝트

우아한형제들의 당시 기준 역사상 가장 큰 개편이라고 불릴 수 있는 먼데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4/1일이 목표일 이였는데, 왜 먼데이 프로젝트인지는 소소한 비밀이다.

해당 프로젝트가 시작하기 직전의 나는 결혼하였고 신혼여행을 다녀오니 팀원들이 모두 자리에 없었고, 내 자리도 없었다. 알고 보니 모두들 전쟁터(War-Room)에 모여있었다

이 프로젝트가 우형에 있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는데, 이 정도 규모의 회사가 사업적으로나, 일적으로나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몇몇의 결정 자체가 아주 신선했고, 올바르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일을 되게 하는 결정을 하는 회사라고 생각되었었다.
(내 생각에는 핵심적인 한 가지 결정이 없었다면, 이 프로젝트는 망했을 거라 생각한다.)

목적지에 깃발 꽂고 우르르 달려가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결과적으로 4/1에 큰 이슈 없이 성공적으로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었다.

사실 이때 특정 팀 or 파트가 고생을 정말 정말 많이 하였는데 대단하고, 우형에 정말 좋은 분들이 많다는 것도 느꼈던 거 같다. (먼저 퇴근할 때마다 미안하기도 했다.)

모두 지나갔으니 이제야 고백한다, 이 프로젝트의 숨은 최대 수혜자는 완전히 우리 파트였다.

중간중간 레거시 폭파도 계속해서 병행하고, 우리 파트의 역할이 아닌 데 그동안 애매하게 맡고 있던 기능을 정리해서 모두 적절한 파트에게 넘겼다.
(바빠서 안 가져갈까 봐 직접 구현해서 다른 파트 프로젝트에 PR도 날렸었다..)

먼데이프로젝트 리뷰 현장 영상

폭파 장인이자, 최고의 팀장님

할인정복 이벤트 (엔드게임 프로젝트)

먼데이가 끝나고 이벤트 전쟁이 시작되었다, 사실상 우리 파트의 경우 앱 메인 트래픽을 잘 버텨주는 게 주 역할+목적이었기 때문에 성능 테스트로 충분한 대비를 하는 게 주요 사항이었다.

대규모 선착순 이벤트는 심각한 수준의 사건은 없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그렇게 순항 하던 중 4/29일 초유의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이벤트 대응 관련 자세한 스토리는 이 영상에서!

이벤트가 완전히 실패한 4/29 저녁 결국 내부에서는 선택을 해야 했고,
약 17시간 (사실상 14시간)이 남은 상황에서 이벤트 트래픽을 견디기 위한 프로젝트를 다시 다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용근님과 나는 이벤트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모르고 있던 상황에서, 핵심 요구 사항인 이벤트 참여 트래픽을 커버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새로 구성을 해야 했었다.

용근님이 없이 혼자 했다면, 이 대응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 같다.
어찌 됐건 결과적으로 시간 내에 완벽히 준비하여 성공적으로 이벤트를 치러냈다.

테스트 매니아, 성능 테스트 집착자 둘이 있으니 실패할 리가 없었다.

둘 다 한숨도 안 자고 다음날 이벤트 종료까지, 거의 35시간 정도를 깨있었는데 이게 나름 추억이 되어 가끔 생각난다,

용근님한테 눈 좀 붙이라고 했는데, 내가 안 잔다며 질 수 없다고 했었다. 그때 사실 반쯤 자고 있어서 소소한 거에도 낄낄거렸다.

이때 늦은 저녁에 영한님과 영호 실장님이 족발도 시켜주고 끝까지 아키텍처 고민해 주시면서 함께 해주셨던 게 든든한 힘이 되었다.
(다들 다음날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나는 특이하게도 우형에서 가장 좋았고 즐거웠던 순간을 뽑으라면, 먼데이 프로젝트와, 이 이벤트 대응을 꼽게 된다.

힘들었지만 가장 치열했고, 뚜렷한 목표, 약간의 스릴, 훌륭한 리더들과 능력 있는 동료와 일할 수 있었던 순간이어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번쩍배달

시기적으론 한창 리뷰 개편 프로젝트 하던 중, 해당 프로젝트가 번쩍하고 떨어졌다.

현재 있는 번쩍배달을 만드는 것은 아니고… 아무튼 여러 상황상.. 매우 긴박하게 작업을 했어야했다.

다행히 기존 프로젝트가 레이어링과 컴포넌트와 모듈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대응을 위한 작업을 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작업 자체는 정말로 어려운게 아니였다.

다만…. 당시에는 심지어 ‘번쩍배달’ 이라는 워딩도 픽스가 안된채로 구현을 진행했었다.

이 일 관련해서 상세히 얘기하면 좋은 얘기는 안 나와서 자세한 것은 생략하겠다.
(좋은 내용만 추억하고 싶으니까…..)

어쨋든 잘 설계된 레이어와 적절한 모듈화가 얼마나 유연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하여 상기하고 또 한 번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빠른 초기 대응으로 적절히 빠른 효과를 보게 되어서 내부에서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탐에 영웅님이 없어서 여러 가지 난감한 상황에서 취향 저격 드립 날리는 정훈 님과 빠르게 일처리 한 거는 꽤 재미있었다.

리뷰 시스템 개편

배민의 리뷰는 꽤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시스템은 생각보다 낙후되어 있었다. (코드도….)

어찌어찌해서 리뷰 개편 프로젝트 중 파트 내 기술 리딩 정도의 역할을 맡게 되었었다, 하다 보니 대충 PL처럼 됐는데 뭐… 그랬다. 이것도 할말하않…

리뷰가 겉보기엔 별거 없어 보이는데, 배민에서 유일하게 사용자가 의견을 피력하는 공간이다 보니, 정책+법률적으로 간단한 게 아니더라.

그래서 기존 도메인을 이해하는데도 시간이 조금 걸렸다, 자료가 있긴 했는데, 명확히 정리된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혼돈 속에서 진행된 게 많아서 조금 아쉬웠다.

우린 어떻게 프로젝트를 잘 끝냈느냐? 데이터 구조 뽀개고, 애매한 정책 부시고, 기존 코드 다 죽였다.

그래도 오랜만에 꽤 데이터가 있는 시스템을 개편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워낙 성장이 빠른 서비스여서 고려해야 할 것도 많고, 적어도 몇 년은 쓸 수 있어야 하고 필요 시 확장도 가능해야하니..

파트원들이랑은 나름 쿵짝이 잘 맞아서 번쩍의 방해를 딛고 열심히 개발해나갔다.
오픈 날 큰 이슈는 없어서 롤백 없이 성공적으로 프로젝트 오픈했고 여러 의미로 후련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 오픈 후 1차 안정화될 즘, 팀장님에게 퇴사 의사를 밝혔다, 사실 이 프로젝트 중간쯤에 이직을 결심했고, 최종 오퍼 결정까지 났었다.

그래도 애정이 있는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해서 분위기를 흐리지 않으려 이직에 대해 말하지 않고 일했고 1차 안정화 후 바로 말하게 되었다.

대충 일 많이 했다는 내용.jpg

리딩 트라우마 폭파

예전에 작성한 에서 언급했듯이 과거 내가 팀장이었을 때의 후회되는 기억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이번 리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되었고

팀장님을 통해서 파트원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듣게 되었고 (내가 물어봤을 때 해주신 피드백들은 빈말일 수도 있으니..ㅎㅎ)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던 어떤 트라우마를 꽤 많이 극복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화 한 번도 안 냈다. (아마…) 약간씩 답답한 순간이 있었으나, 잘 헤쳐나간 거 같다.

같이 해서 재미있었다, 다시 해도 같이하고 싶다. 등등 대략 좋은 말들 이였는데, 자꾸 태클 걸고 따지고 들었던 기억만 있는데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나야말로 함께 해서 즐거웠고 감사했다.

예전의 맡았던 팀이 배민에서는 파트 정도의 규모긴 하다, 그렇다고 이제 내가 갑자기 리딩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절대 절대 아니고..

프로젝트를 리딩 하는 수준에 있어서는 트라우마가 없어진 것 같다.

어찌 되었건 존경하는 팀장님과 좋은 동료들에게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듣게 된 거는 기쁜 일이었다.

또 리딩 할 일이 생기겠지만, 성질 안 부리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잘 안 돌아가는 거 같으면 그냥 내가 다 해버리지 뭐…….)

그럼에도 팀장이나 관리자 관점의 매니징은 정말 하기 싫다, 매니징은 전혀 다른 역량이 필요한 것 같다. 시켜주지도 않겠지만 하기도 싫다.

좀 더 늙더라도 프로젝트 리딩 정도나 하면서, 그저 개발이나 신나게 많이 많이 많이 하고 싶다.

역대급 리더, 팀장님과 팀원

결과적으로 우형은 내가 다닌 회사 중 1.7위 정도를 등극했다. (등수에 소수점 먹인 거는 처음이다.)

먼데이+이벤트 대응쯤? 까지는 1.2위까지 올라갔었는데, 그 후… 뭐…

그럼에도 1.7위까지 올라갔던 이유는 몇몇 가지가 있지만
이 곳에서 역대급 카리스마의 팀장님을 만났고, 팀원들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

또 CTO님, 개발실장님, 각 분야의 팀장님들, 특출난 기획자님들, 긍지의 QA분들 모두 훌륭한 동료가 매우 많았다.

8군데 회사를 다니며 이렇게 평균적으로 수준이 높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물론 특출난 사람이 몇몇 있는 것도 굉장한 장점이지만

평균 수준이 높은 게 정말 어려운데, 채용을 정말 잘하고 계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음.. 그래서, 누군가 우형에 올 마음이 있다면, 이 팀을 적극 추천하고싶다.

퇴사

그렇게 좋음에도 왜 퇴사하는가.

지금 이대로라면 회사, 팀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잘 다닐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만족도가 높은 편인 것도 사실이니까.

그렇지만 나는 언제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을 택했었고, 그 도전들에 다치고, 깨부수고, 이겨나가며 경험치를 쌓고 쌓아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도전에 실패 한 적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그렇다, 더 굴러대면서 긁히고 상처받고 나를 더 성장 시키고 싶었다. 그에 맞는 선택을 했다.

퇴사 결정 후에도 여러 상황이 겹치면서 받은 제안들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심리적으로 불편했다, 누가 들으면 행복한 고민이겠지만 잠도 잘 못 잤었다.

10년차 이직 9번

이번에 면접 볼 때도 그렇고 주변에서 도장 깨기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다.

도장 깨기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이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한 회사들은 많지만, 더 이상 ‘아.. 이 회사 가고 싶다’ 하는 회사는 없다.

회사보다 사람, 팀을 보게 되는 것 같다, 같이 일해본 괜찮은 사람이 재밌게 일하고 있는 팀이라면 회사의 규모는 크게 안 중요한 것 같다.

또 여러 회사를 경험하며 내가 얻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
궁극적으론 나는 모든 회사에 패턴을 흡수하여, 내가 생각하는 회사의 이상향을 계속 진화시키며 정립하고 있다.

만약 다시 제대로 창업을 하게 된다면 꼭 그 결과물을 적용할 것이다.
(호불호 심할 것 같긴 하다..)

항해

인생은 계속 항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목표는 끝이 없고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계속 헤쳐나가야 한다.

이 글을 올리기 직전 지금 이직한지 두 달이 지났고, 이곳에서의 중간 평가도 감사하게도 꽤나 호평을 받았다.

모르겠다, 그냥 나는 이 일, 개발 자체가 너무 좋다, 그냥 일하기 좋은 회사를 찾고 그 회사에서 여러 가지를 느끼며, 언젠가 내가 회사를 차리거나 영향력이 있다면 가장 일하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

그렇지만 모든 회사들은 결이 있다, 그 결 자체가 안 맞는다면 오래 있을 수 없다.

재수 없지만? 갈수 있는 회사, 오라는 회사가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다.
좋은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면 좋은 개발자가 되어야 하듯이, 좋은 개발자와 일하고 싶다면 좋은 회사가 되어야 한다.

모든 개발자들이 각자 자기 기준에 따라 회사 평가를 꾸준히 하면 좋겠다.

내 경우는 정말 일하기 좋은가?, 인생을 낭비하게 만들지 않는가? 인 것 같다

일 잘하는 척만 하고, 자기 신념 없는 생각과 결정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1초도 원하지 않는다, 내 인생이 가치 있는 일들에 소모되기를 원한다.

뭐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다, 누가 여기까지 읽을지 모르겠지만,,

함께 했던 모두들 특히 우리 팀 정말 재밌었고 님들 덕에 출근할 맛 났어요,
이직하면 연락하고, 놀러도 오시고, 또 만납시다.
(이직하고 싶으면 꼭 먼저 저한테 연락해요, 소고기 먹읍시다.)

이런 추억 또 언제 쌓아보나 싶다.
일이 너무 재밌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신나 하는 것을 팀장님이 찍어주셨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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